열린의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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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걸 장군 학술대회 등록일 : 2014-12-23

조회수 : 1351

여러분! 반갑습니다. 고흥군의회 의장 장세선입니다.

오늘! 송정(松亭) 정걸(丁傑) 장군 학술발표회를 맞이하여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먼저 이 자리를 만드신 군수님과 문화관광과 담당직원분들, 그리고 압해정씨 종친회 정현성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님, 특히 정걸 장군의 다양한 활약과 인물상을 그려내기 위해 애쓰신 순천대 최인선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진께 한없는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는! 역사와 역사의 한 시대를 이끈 것은 역대, 당대의 사람들이고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표상을 만들고 이를 후세에 삶의 지표로 만들고자 하는 작업이 인물사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송정 정걸 장군은 중종 9년 1514년에 영광인으로 상춘곡의 저자 불우헌 정극인의 현손, 정숭조의 차남으로, 1544년에 태어나 30세에 무과에 급제하였습니다. 관직에 등용되고 서북만호를 비롯해 종성부사, 충청수사 등 군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충효를 근본에 두고 오로지 백성의 안위를 지키는데 진력한 인물이었습니다.

더구나 명종 10년 달량왜변 승첩,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의 조방장으로 활약하였고, 임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성대첩 시 공헌 등은 후세에 호국 의지를 크게 다독였으며, 퇴임 후 귀향하여서는 “애기소”를 만들어 치수에 힘써 손수 권농을 행하여 칠인정을 만들어 학문에 전력하였습니다. 한편으로, 당대에 장군의 집안은 충의 가문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장군의 아들 정연과 손자 홍록은 정유재란에서 힘써 싸우시다 전장에서 순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역대 인물을 비교하더라도 뒤지지 않는 호국 정신과 충효의 얼이 깃든 장군의 생애가 역사 뒤편에 있었음은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이고 역사의 아이러니였습니다. 역대 인물의 조명은 후손이 주도해왔고, 정걸 장군의 가문이 순절로 단절되어 조명이 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역사를 살펴볼 때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하여 이번 학술대회가 저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오늘! 장군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정걸 장군의 생애와 애국, 충효, 권농의 측면에서 체계화되는 장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또한, 이번 학술대회는 고흥의 인물사 연구에 획기적인 일이며 전환점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학문으로 체계화된 정걸 장군의 삶을 후세에 전하고, 후세가 장군의 삶을 본받는 것은 여기 모이신 우리의 몫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학술대회가 있기까지 수고해주신 연구진과 실무 관계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다가오는 을미년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마다 행복이 충만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